하드 스킬, 소프트 스킬, 도메인 지식
AI가 보조하는 시대에 대체하기 어려운 역량을 돌아본다.
수준 높은 AI의 보급이 흔한 세상이다. ChatGPT, Gemini, Claude, Perplexity 등의 범용 생성형 AI와 Cursor, Copilot과 같은 특정 작업에 특화된 AI 서비스는 업무를 대체하지 못하더라도 많은 부분에서 보조해주고, 일상 속의 다양한 부분에서도 많은 도움을 준다. 이런 서비스들을 직원들에게 AI 서비스를 지원해주는 회사도 많고, 직접 개인이 이런 서비스를 결제해 일상 속에서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당장 소프트웨어 개발에서 Copilot, Cursor와 같은 AI 코딩 어시스턴트 없이 개발 업무를 진행해보라면 못할 것은 없다. 실제로 2021년 Tabnine AI, 2022년 Amazon CodeWhisperer 같은 AI 코딩 어시스턴트를 적극적으로 사용했지만 작년에 업무를 진행할 때는 일체의 코딩 어시스턴트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랬던 스탠스 바뀐 이유는 생산성의 차이를 적나라하게 체감했기 때문이었다.
작년 말, 해커톤을 진행할 때 Cursor를 처음으로 적극적으로 사용해봤다. 그 때 생산성의 차이에 대한 벽을 첫 번째로 마주했고, 두 번째로는 하드 스킬, 즉 기술적인 부분에 있어서도 AI의 이해도가 좋다는 것을 느꼈다. 가령 처음 사용해보는 라이브러리가 있을 때, 기술 문서를 직접 읽어가며 지식을 체득하고 개념 증명과 실제 적용의 과정에서 AI가 대신해주는 부분이 많고, 그 부분들이 높은 확률로 정확했기에 크게 단축된다는 것이다.
또한 나는 웹 상에서 지식을 많이 얻는 편인데, AI의 수준이 올라감에 따라 언어의 장벽을 무너트리는 것뿐만 아니라 소요되는 시간과 노력마저 줄어들었음도 느꼈다. 이런 단편적인 사례뿐만 아니라 다양한 개인에게 또 더욱 다양한 AI를 활용한 생산성과 편의성 향상 사례가 있을 것이다.
이렇게 점점 많은 영역을 단순화하고 자동화해서 대체해나가고 있는 AI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가끔 두렵기도 하다. 소위 요즘 많은 이들이 이야기하고 있는 그것과 유사한 ‘내 직업, 대체되는 것은 아닐까?’. 5년 뒤나 10년 뒤는 잘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당장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럼 아마 지금의 마주치고 있는 과도기와도 같은 현실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전략을 수립하고 대체하기 어려운 역량을 키우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여러 관점과 그에 따른 다양한 후보가 있을 것이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론 먼저 소프트 스킬이 있다. 일을 혼자 처리할 게 아니라면 결국 관계는 얽히게 되고, 이 얽힌 관계를 명확하게 만들고 풀 수 있는 수단이 소프트 스킬이라고 불리우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 소프트 스킬에는 언어적인 것들도 있지만, 비언어적인 것들도 굉장히 많다. 그리고 현재의 AI 서비스의 인터페이스는 대부분 챗봇과 유사한 형태다. 다음 차원의 인터페이스가 어떤 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러한 형태가 유지될 근미래적인 시점으로 한정했을 때는 이 비언어적인 부분의 해소나 대체는 다소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드 스킬은 어떨까? 개발 측면에서 살펴보자면, v0, Lovable 같은 서비스는 대단한 지식과 기술 없이도 아이디어를 머릿속에서 현실로 꺼내준다. 정말 마이크로한, 핀포인트 수준의 지식이 필요한 기술이 아니라면 많은 부분들이 대체되고 있음을 느끼고 있는 요즘이다. 그래서 정말, ‘대가’가 되지 않는다면, 그런 아마추어들은 다소 크지 않은 비용과 시간으로 대체될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여기, 하드 스킬과 비슷하지만 다른 맥락의, 도메인 지식이라는 것이 있다. 최근에 Web3, 온체인 상호작용을 하는 서비스를 개발했었다. 아마 요즘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생태계 중 하나의 서비스일 것 같다.
그 서비스 속 다양한 기능 중 하나는 같은 네트워크에서의 토큰 스왑 기능이다. 단순한 토큰 스왑 기능을 개발했지만 스마트 컨트랙트를 확인하고, ABI를 찾아서 매칭하고, 또 이에 맞게 타입과 파라미터를 설정해야 했다. 결과적으로 정해진 기간 안에 이슈없이 런칭하게 되었지만, 원체 Web3와 온체인에 대한 도메인 지식이 없다보니 밤낮으로 공부하고 PoC를 반복하며 이해하려 해도 쉽지 않았다.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해도 쉽지 않았다. 정보를 찾는 것부터 쉽지 않았고, Cursor나 ChatGPT와 검증을 반복했지만 큰 도움은 되지 않았다. 내가 그 개념을 알고 있고, 이에 따라 계획과 설계를 토대로 AI에게 구현을 시켜야하는데 개념 정립부터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 당연한 수순이다.
결국 소위 말하는 ‘삽질’을 통해서 연속된 검증과 내 가스비를 직접 태워보면서 지식을 얻게 됬다. 그제서야 엔지니어링 기술만 좇던 나에게 비로소 이 Web3 업계의 지식과 온체인의 기술적 배경에 대한 지식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고, 도메인 지식은 하루이틀만에 쌓이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나름 AI, ML 관련 개발을 직접 할 수 있는만큼의 지식은 없어도 많은 아티클과 논문을 읽으면서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AI 서비스에 대해서도 얼리어답터적인 태도를 유지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기존 프로세스의 개선과 새로운 프로세스를 생각하고, 이야기해왔다. 그런 시간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번 경우에서는 AI를 활용한 문제 해결 시도 결과는 좋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AI에 무의식적으로 기대고 있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번의 일에서 맹목적으로 AI만 좇고 있었다면 성공적으로 서비스를 런칭할 수 없었을 거고, 따라서 그 정도는 아니었다고 본다.
그래서 나는 이번 프로젝트에서 얻은 것들이 굉장히 많았다. AI는 대체하는 것이 아닌, 보조하는 것이라는 점. 하드 스킬과 소프트 스킬 사이에 존재하는 도메인 지식은 아직까지 투자한 시간과 노력을 AI로 따라잡기는 어렵다는 점. 그렇기 때문에 더 다양한 수단과 방법으로 노력하는 것이 대체하기 어려운 역량을 만들어줄 것이라는 점. 그리고 여전히 AI에 대한 인사이트를 놓치면 안되겠다는 점까지.
내년 이맘때의 시간과 그 속의 내가 궁금해진다.
원문: Medi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