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cap 2024
엔지니어가 된 첫 해의 제품·기술·개인적인 변화를 돌아본다.
입사




모든 도움을 뿌리치고 홀로 증명하겠다는 일념으로 연도 없는 엔지니어의 꿈을 꿨다는 게 말이 안된다고 생각한다. 올해도 참 쉽지 않다고 느껴지지만, 내가 취업할 때도 그러했다. 어떻게 가능했냐고 묻는다면 글쎄, 운과 실력과 다른 모든 것들이 자정을 가리키는 시침과 분침과 초침처럼 잘 맞았기 때문이 아닐까.
지금은 팀을 떠나신 팀장님, 새롭게 지휘봉을 잡으신 현재의 CTO님, 그리고 현재의 팀을 이끄는 두 리드분이 좋게 봐주신 것에 감사하고, 또 지금도 좋게 봐주시니 여전히 감사할 따름이다. 회사에 들어오면서 뛰어난 인재 밀도 속에서 정말 많은 걸 배웠지만, 나에겐 이분들이 가장 큰 영향력과 신뢰를 주셨다고 느끼고 있다. 후에 리드나 매니저 역할이 주어질 때 어떻게 해야할 지에 대해 생각하게 됐고, 좋은 귀감이 되어주셨다.
나보다 앞서 입사해 근무하던 프론트엔드 팀 동료들도 빼놓을 수 없다. 좋은 팀 동료라는 모습을 묘사해야 한다면 분명 이런 모습으로 묘사할 수 있다. 지금은 더 좋은 곳으로 떠나신 동갑내기 기획자님은 경력도 있으셔서 부족한 나를 많이 이끌어주셨었는데, 떠나시기 전 이루고자 하셨던 꿈을 온전히 이뤄드리지 못해 미안하고 아쉬운 느낌도 남아있다. 그래도 처음에 좋은 기획자님을 만난 덕분에 제품 엔지니어로써 가져야할 마음가짐이 뚜렷해져, 어딜 가나 잘 하실 분이시지만 더 잘 되셨으면 하는 바램과 감사함을 갖고 있다.
내가 적응을 마쳐갈 때 쯤 오신 프론트엔드 팀 동료분은 꽤 특별하다. 참 똑똑하고 침착하신 분인데, 나이대가 겹친다는 것 외에는 이렇다 할 공통 분모가 없다. 그렇지만 이렇게 흘러 들어오게 된 연유나, 사고의 프로세스와 같은 부분들이 참 비슷하거나 익숙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던 게 특별하다고 느낀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완전히 다른 도메인과 배경은 내 지식의 저변을 넓혀줬고, 이 분과 나누는 이야기들은 흥미롭지 않은 게 없다. 내 정성적인 부분의 성장을 이끌어준 참 고마운 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제품과 기술
정말 다양한 업무적인 경험을 했다. B2B, B2C 제품뿐만 아니라 B2B2C 향이 강한 제품도 만들어보는 경험을 했다. 제품이 지향하는 거래의 형태에 따라 신경쓰고 고민해야할 것들이 상이했다. 그래도 1년동안 이 다양한 케이스에 대한 경험을 할 수 있던 것은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사고 전환은 빠른 편이지만 완전히 새로운 환경에 대한 적응력은 아쉬운 편이라고 평가한다. 그래서 소속이나 담당 제품, 협업하게 되는 사람들이 바뀔 때마다 이에 적응할 수 있을까에 대한 걱정이 컸지만, 아직까지 잘 해내고 있는 걸 보면 성공이 아닐지언정 실패는 아닌 것 같다. 생각해보면 기술에 대한 부분도 변화가 컸다.
입사 후 회사에서 주로 사용 중인 Vue.js, Nuxt.js에 익숙해지는 시간을 거쳐, 근래의 신규 프로젝트부터는 React, Next.js를 도입하기로 결정하면서, 현재 웹 프론트엔드의 양대산맥과 같은 기술을 실무에서 사용하는 기회도 얻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Vue, React 뭐던 하나에 정통했다면 나머지 하나도 금방 익숙해지는 것 같다. 어차피 같은 자바스크립트, 타입스크립트를 사용하고 가상 DOM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프레임워크라는 것이 작용했다고 본다.
입사 당시에는 블록체인이라는 미지의 영역과 기술, 그리고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에 대한 호기심 정도만 갖고 있고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몇 없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회사가 속한 산업 지식이 부족하면 수행하기 어려운 업무가 왕왕 있기도 했고, 회사 내 동료들과 소통하면서 블록체인 관련 지식이 꽤 늘었다. 이런 산업 지식의 확장이 업무뿐만 아니라 회사의 비전과 방향에 함께하는 데에도 영향을 준다고 생각해서 작년 말에는 이런 저런 블록체인 관련 밋업에도 적극적으로 참가했고, 아티클도 찾아 읽었다. 지금은 소프트웨어 월렛뿐만 아니라 하드웨어 월렛도 이용하고 있고, 스왑, 브릿지를 해봤고, 에어드랍도 받아봤다. 아직 겨우 초입이지만, 블랙박스였던 부분이 많이 걷혔다고 느끼고 있다.
두 번의 업무 평가도 있었다. 그때마다 ‘당시’에 대한 평가는 괜찮았고, 발전 방향과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고, 여쭤봤던 기억이 있다. 성향이나 배경이 완전히 다르신 두 분께 받았지만, 핵심으로 귀결되는 이야기는 같았다. 강한 책임감과 열정이 강점이었고, 적극성을 더 키워볼 것을 권유해주셨다.
입사 당시, 3개월 후, 9개월 후를 기억한다. 입사 초에는 낮아진 자존감에 적극성이라곤 찾아볼 수도 없었다. 무엇을 알고 모르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3개월 후는 첫 프로덕트 런칭을 해낸 시점이었는데, 회사에서 사용하는 기술과 업무 방식에 익숙해지면서 사내 기술 문서를 작성하고 공유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9개월 후에는 작성한 사내 기술 문서가 10건이 넘었다. 기술 트렌드를 소개하기도 하고, 기술적인 문제나 방향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근래에 이루어진 리액트 전환이라는 부분에선 선두에 서서 사내 라이브러리를 구축하기도 했다. 이렇게 타임라인을 짚어보니 적어도 여태까지는 좋은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Personal or Private
취업 준비 기간에는 ‘엔지니어가 되고 나면‘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한 버킷리스트가 참 많았다. 단순 써보고 싶은 기술에 대한 지적 유희, 게임이나 머신러닝처럼 완전히 새로운 영역에 대한 탐구, 오프라인 기술 밋업이나 컨퍼런스 참가. 피아노와 색소폰처럼 이전에 다루던 악기들도 다뤄보고 싶었고, 어릴 적 가장 몰입했던 독서라는 취미도 그 중 하나였다.
정말 하나도 하지 못한 건 아니었지만, 근 1년은 대개 지지부진했던 것 같다. 그나마 근래의 이사 후, 대중교통으로 통근을 하게 되면서 밀리의 서재를 통해 읽고 싶던 책을 겨우 읽고 있다. 왜 그렇게 됐을까. 생각해본 바로는 완벽주의자이자 워커홀릭적인 성향때문인 것 같다는 결론이 섰고, 많이 덜어내려 노력하고 있지만 관성이라는 게 있듯 좀처럼 잘 되지 않는 것 같다. 다행히 여름 즈음 나타나준 여자친구가 이런 부분들을 많이 도와주고 있고, 항상 고마울 따름이다.
그래도 취향에 맞는 지적 유희를 누리기 위한 실험적인 시도들은 계속해서 존재했다. 여름에는 Kotlin, Spring Boot를 배워봤었다. 단, 실무에서 사용할 기회가 없고 Spring도 취미로 배워 사용하기엔 복잡하고 방대한 도구라는 생각이 들어 Kotlin이라는 언어적 개념을 응용해보는 수단에 그쳤다. 최근에는 전 팀장님께 추천받았던 Golang을 짬날 때마다 배우고 있는데, 확실히 실무에사 사용하는 언어와 매우 다른 성질의 언어를 배우면서 굳어져가는 시야의 한계가 무너지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일이 어느정도 손에 익은 후에는 프론트엔드 및 블록체인 관련 밋업, 컨퍼런스도 최대한 다녀오려 노력했다. FE Conf 2024, Xangle Rising Star Week, The Sandbox 2024 Review, Kakao Tech Meet #7, AI Blockchain Community, WWW30KR, ai16z Seoul Meetup. 특히 WWW30KR, 한국 웹 30주년 기념 세미나는 동경하던 석찬님을 직접 뵐 수 있었던 매우 영광적인 순간이었다. 커리어 시프트를 준비하며 우연찮게 읽었던 아티클에 흥미를 느껴 블로그에 작성하셨던 대부분의 글까지 읽게 되면서 그 분의 생각과 통찰에 감탄해왔는데, 직접 뵐 기회가 있을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Transformer 이론의 저자이자, Near Protocol의 수장인 일리야 폴로수킨을 보기도 하고, 카카오 본사, AWS 코리아 오피스를 구경해보는 경험도 할 수 있었다. 아쉽게도 올 1월부터는 주말과 평일에도 스케줄이 생기는 경우가 잦아지면서 더 많은 오프라인 밋업에 참석하기는 어렵게 됐다. 여유가 생긴다면 다시 열심히 참석해 볼 생각이다.
기록이라는 키워드에도 꽤 변화가 있었다.원래 취업을 준비하면서는 Notion을 사용했었고, 회사도 Notion을 사용하고 있다. 둘 다 Notion을 사용하고 있지만 워크스페이스가 다르다는 귀찮은 문제로, 입사 초기에는 Obsidian에 도전했었다. 마크다운 문법도 익숙했고 애플리케이션이 가벼운 것도 매력적이었지만, 더 다양한 포매팅과 다양한 기기간의 동기화라는 문제로 인해 석 달 정도를 사용하고 다른 노트 애플리케이션에 대한 니즈가 다시 생겼고, 그 니즈는 Craft라는 도구로 이어졌다. Apple 친화적인 부분은 어차피 윈도우를 비롯한 타 OS 기기를 사용할 일이 잘 없기도 하고, 웹앱의 형태도 제공되었기에 아무래도 괜찮았다. 그렇지만 종종 한글 자모 입력이 누락되거나, 코드 스니펫을 작성해두었을 때 빈 박스로 보여지는 현상이 꽤 걸리적거렸고, 결국 Notion으로 회귀하게 되었다. Slab이라는 선택지도 찾았었지만, 네이티브 애플리케이션이 없다는 것이 아쉬웠고 앞으로 API를 이용한 외부로의 확장성, 출시된 지 얼마되지 않아 다소 아쉬운 기능들이 발목을 잡았다.
한 편, 2024년은 내가 살아온 순간들이 헛되거나 막되지 않았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던 시간이었다. 회사에 입사해 상경하면서 잊고 지내던 많은 사람들이 고맙게도 먼저 나를 찾아줬다. 친한 동기의 결혼식 사회를 보는 값지고 귀중한 경험도 했다. 불과 작년 봄과 여름에는 ‘행복이란 무엇인가’, ‘굳이 행복해야 할까’를 고민하고 있었는데, 확연하게 논리적인 이유를 대지 않더라도 지금의 순간들은 확실하게 행복해졌다고 느끼고 있다.
결
엔지니어가 된 첫 해를 보냈다. 그리고 경력 엔지니어로서의 온전한 첫 달을 보내고 있다. 여전히 매 순간이 잘하고 있는가,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떤 것이 잘하는 것인가와 같은 모호한 고민의 반복이다. 유한한 자원을 어떤 것을 잘하기 위해 투자해야 하고, 할 수 있는지 정의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아마 여태 해온 것들에 대한 정리와 그것들을 어떻게 해왔는지에 대한 정리가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작년의 목표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기’였던 것 같다. 그래서 올해의 목표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알기’다. 작년에는 적응이 필요했고, 나의 한계를 파악하는 것이 어려워 내가 할 수 있다는 판단이 서면 조금 가감없이 일을 벌리고자 했다. 그래서 좋았던 것들도 있었지만, 좋은 것들만 있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 스스로의 한계에 대한 의식을 하고, 이를 내가 해야 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에 적절히 분배해야 그것들을 긴 호흡으로 꾸준히 오랫동안 가져갈 수 있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무언가 기회처럼 보이는 게 있다면, 분명 도달하려 노력할 것 같다. 가진 것들과 가질 수 있는 것들의 소중함을 배웠기 때문에.
개인과 회사는 같은 것이 아닌 잠깐 동행하는 것이라는 것도 배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인 의지를 갖지 않고 있는 이유는 동료들이 가장 크다. 작년 한해동안 업무적으로, 정서적으로 많은 도움을 받았고, 그런 동료들을 잃고 싶지 않다. 가능하다면 여력 닿는 데까지 도와주고, 보답하고 싶다.
2024년에 날 이끌었던 별 거 아닌 것들에 대해서도 돌이켜 봤다. 2025년에는 조금 더 풍부해졌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 올해의 아티스트: FKJ
- 올해의 음악: 지소쿠리 클럽 — Peanut Buftter Sandwich
- 올해의 브랜드: 와이프로젝트
- 올해의 책: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면(요지후라 분페이)
- 올해의 브라우저: Vivaldi
- 올해의 언어: TypeScript
- 올해의 프레임워크: Nuxt.js
- 올해의 프로그램: Cursor
- 올해의 낭비: Adobe Creative Suite
- 올해의 감사한 분: 팀원들
- 올해의 특별한 분: 윤석찬님
- 올해의 색: 초록
- 올해의 동물: 참새
- 올해의 커피: 일리
- 올해의 디저트: 크레페
원문: Medium